무신정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170년 8월, 보현원에서 무신(군인 출신 관리)들이 칼을 뽑았습니다. 그 뒤 약 100년 동안 무신이 고려를 다스렸습니다. 그날 정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고려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건 1170년고려 · 혁명과 정변조회 0댓글 02026.11.03
AI 재현도왕이 놀러 나온 자리에서 무술 겨루기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젊은 문신이 나이 든 대장군의 뺨을 때렸습니다. 둘러선 무신들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실제보현원에서 시작된 100년
1170년 8월의종이 시킨 오병수박희(맨손 무술 겨루기) 자리에서 대장군 이소응이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습니다.
1170년 8월이의방·이고 등이 정중부를 앞세워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죽이고, 그날 밤 개경에서 문신 50여 명을 더 죽입니다.
1170년의종은 거제로, 태자는 진도로 쫓겨나고 의종의 아우가 명종으로 즉위합니다. 무신 회의 기구인 중방이 나라를 이끕니다.
1196년무신끼리 다툼 끝에 최충헌이 이의민을 없애고 권력을 독차지합니다.
AI 재현도갈림길쌓인 차별, 길어진 정권
무신이 오를 수 있던 가장 높은 자리정3품 상장군
VS무신 정권이 이어진 기간약 100년
고려 전기에는 문신이 재상 자리를 차지했고, 무신은 정3품 상장군까지만 오를 수 있었습니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처럼 무신을 깔보는 일도 잦았습니다. 쌓인 불만이 터지자 무신 정권은 127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만약의종이 무신을 달랬다면
뺨을 맞은 일 뒤에 의종이 한뢰를 벌하고 무신들을 크게 대접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불만이 한꺼번에 터질 계기가 사라집니다.
- 1170년대무신에게도 더 높은 벼슬길이 조금씩 열립니다.
- 1180년대문신과 무신이 함께 나라를 이끄는 틀이 자리를 잡아 갑니다.
- 1190년대왕실과 문벌 귀족(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의 힘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문벌 귀족이 자리를 쉽게 나누어 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②일반 군인들의 불만도 컸기 때문에 다른 계기로 터졌을 수 있습니다.
③왕의 사치와 놀이로 나라 살림이 이미 기울고 있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1170년 | 보현원에서 정변 | 평온하게 지나감 |
| 의종 | 거제로 쫓겨남 | 왕위를 지킴 |
| 권력을 쥔 쪽 | 1270년까지 무신 | 왕실과 문신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약 100년 동안 이어진 무신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 왕을 중심으로 한 나라의 틀이 더 오래 유지되었을 수 있습니다.
- 무신 정권 아래 거세게 일어난 농민·천민의 봉기가 줄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문벌 귀족이 계속 높은 자리를 독차지해 나라가 굳어 갔을 수 있습니다.
-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오래 버틸 군사 정권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무신 정권이 이어지던 1236~1251년에 새긴 고려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은 지금도 합천 해인사에 남아 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신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장도감」 · itwiki 「무신 정변」 · itwiki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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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를 기다립니다무신정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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