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1884년 겨울, 조선의 젊은 관리들이 나라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끝났습니다.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조선 최초의 우체국 개국 잔치가 한창이던 밤, 밖에서 "불이야!" 소리가 났습니다. 미리 짜 둔 신호였습니다.
실제사흘 동안의 일
12월 4일김옥균 등 젊은 관리들(개화파)이 소동을 틈타 청나라 편 대신들을 몰아냅니다.
12월 5일새 정부를 세웁니다. 궁궐은 일본 군인들이 지킵니다.
12월 6일"청나라 간섭을 끊고, 신분 대신 실력으로 사람을 뽑겠다"는 개혁을 발표합니다. 그날 오후,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갈림길처음부터 10배 차이
개화파 편 일본군약 150명
VS청나라 군대약 1,500명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가 오자 바로 물러났습니다. 김옥균 등은 일본으로 도망쳤고, 끝까지 왕 곁에 남은 홍영식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만약청나라 군대가 오지 않았다면
당시 청나라는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군대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 1884년개화파 정부가 자리를 잡고, 거리에 처음으로 경찰이 섭니다.
- 1885년조선이 청나라와 관계를 끊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 1890년대여러 나라와 손잡으면 근대 국가로, 일본에만 기대면 일본의 손에 더 일찍 들어갑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백성들은 무슨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②일본 군대에 기댔습니다. 일본이 등 돌리면 끝입니다.
③돈이 없었습니다. 개혁할수록 일본에 빚이 늘어납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1884년 | 사흘 만에 실패 | 개화파 정부 출범 |
| 청나라 | 간섭이 더 심해짐 | 조선과 관계 단절 |
| 10년 뒤 | 청일전쟁(1894) | 근대 국가 또는 일본의 보호국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근대 학교와 신문이 10년 일찍 생깁니다.
- 신분보다 실력이라는 생각이 더 일찍 자리 잡습니다.
- 국경일 몇 개가 다른 날, 다른 이름이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외국의 간섭이 더 일찍 시작됩니다.
- '개혁'이 나쁜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정변의 무대였던 우정총국 건물은 지금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갑신정변」 · Wikipedia "Kapsin Coup" · 톈진 협약 원문(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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