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1388년 여름, 요동으로 가던 고려 군대가 압록강의 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대로 강을 건넜다면 고려는 계속 이어졌겠습니까?
장맛비로 불어난 압록강 한가운데, 위화도에 5만 명의 군사가 발이 묶였습니다. 강물은 줄지 않았습니다. 우군을 이끈 이성계가 마침내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실제한 달 반 동안의 일(음력)
4월 18일명나라가 철령 북쪽 땅을 직접 다스리겠다고 알려 오자, 최영의 주장으로 요동 정벌군이 출발합니다. 좌군은 조민수, 우군은 이성계가 이끕니다.
5월 7일군대가 압록강의 섬 위화도에 닿습니다. 강물이 불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5월 22일이성계가 조민수와 의논해 군대를 되돌립니다(회군).
6월회군한 군대가 개경에 들어가 최영을 귀양 보내고, 우왕을 왕위에서 몰아냅니다.
갈림길왕명과 네 가지 반대
최영"요동을 친다"
VS이성계"네 가지 이유로 안 된다"
이성계는 4불가론(정벌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을 올렸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면 안 되고,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면 안 되며, 그 틈에 왜구가 들끓고, 장마에 활이 풀리고 병이 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압록강을 건넜다면
물이 빠져 군대가 그대로 요동으로 들어갔다고 가정해 봅니다. 당시 명나라는 세워진 지 20년 남짓 된 나라였고, 요동은 아직 다스림이 굳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 1388년고려군이 요동의 성 몇 곳을 차지하지만, 명나라 대군이 곧 반격합니다.
- 1390년대명나라와 긴 싸움이 이어지고, 남쪽 바다에서는 왜구가 더 기승을 부립니다.
- 1400년 무렵최영 중심의 고려가 이어지거나, 지친 나라가 다른 장수의 손에 넘어갑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명나라는 땅도 군대도 고려보다 훨씬 컸습니다.
②왜구가 남쪽 바다를 계속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③장수들부터 정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의 마음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1388년 | 위화도에서 회군 | 요동으로 진격 |
| 권력 | 이성계 세력이 실권 장악 | 최영과 우왕이 계속 집권 |
| 4년 뒤 | 1392년 이성계 즉위, 조선 건국 | 고려가 이어지거나 명과 긴 전쟁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나라 이름이 지금도 '고려'일 수 있습니다. 영어 이름 'Korea'와 더 잘 들어맞습니다.
- 요동 일부가 한동안 우리 땅으로 남았을 수 있습니다.
- 수도가 한양이 아니라 개경(지금의 개성)에 남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명나라와의 전쟁으로 나라가 더 일찍 무너졌을 수 있습니다.
- 훈민정음처럼 조선에서 나온 것들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위화도는 지금도 압록강 하류의 섬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 평안북도 신도군에 속합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화도회군」 · Wikipedia "Wihwado Retreat" · Wikipedia "Wihwa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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