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는 사료로, 만약의 역사는 근거로 씁니다
한국사혁명과 정변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1388년 여름, 요동으로 가던 고려 군대가 압록강의 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대로 강을 건넜다면 고려는 계속 이어졌겠습니까?

2026.11.03 · 1388

장맛비로 불어난 압록강 한가운데, 위화도에 5만 명의 군사가 발이 묶였습니다. 강물은 줄지 않았습니다. 우군을 이끈 이성계가 마침내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실제한 달 반 동안의 일(음력)

4월 18일명나라가 철령 북쪽 땅을 직접 다스리겠다고 알려 오자, 최영의 주장으로 요동 정벌군이 출발합니다. 좌군은 조민수, 우군은 이성계가 이끕니다.
5월 7일군대가 압록강의 섬 위화도에 닿습니다. 강물이 불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5월 22일이성계가 조민수와 의논해 군대를 되돌립니다(회군).
6월회군한 군대가 개경에 들어가 최영을 귀양 보내고, 우왕을 왕위에서 몰아냅니다.

갈림길왕명과 네 가지 반대

최영"요동을 친다"
VS
이성계"네 가지 이유로 안 된다"

이성계는 4불가론(정벌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을 올렸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면 안 되고,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면 안 되며, 그 틈에 왜구가 들끓고, 장마에 활이 풀리고 병이 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압록강을 건넜다면

물이 빠져 군대가 그대로 요동으로 들어갔다고 가정해 봅니다. 당시 명나라는 세워진 지 20년 남짓 된 나라였고, 요동은 아직 다스림이 굳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 1388년고려군이 요동의 성 몇 곳을 차지하지만, 명나라 대군이 곧 반격합니다.
  • 1390년대명나라와 긴 싸움이 이어지고, 남쪽 바다에서는 왜구가 더 기승을 부립니다.
  • 1400년 무렵최영 중심의 고려가 이어지거나, 지친 나라가 다른 장수의 손에 넘어갑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명나라는 땅도 군대도 고려보다 훨씬 컸습니다.
②왜구가 남쪽 바다를 계속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③장수들부터 정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의 마음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실제만약
1388년위화도에서 회군요동으로 진격
권력이성계 세력이 실권 장악최영과 우왕이 계속 집권
4년 뒤1392년 이성계 즉위, 조선 건국고려가 이어지거나 명과 긴 전쟁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나라 이름이 지금도 '고려'일 수 있습니다. 영어 이름 'Korea'와 더 잘 들어맞습니다.
  • 요동 일부가 한동안 우리 땅으로 남았을 수 있습니다.
  • 수도가 한양이 아니라 개경(지금의 개성)에 남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명나라와의 전쟁으로 나라가 더 일찍 무너졌을 수 있습니다.
  • 훈민정음처럼 조선에서 나온 것들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위화도는 지금도 압록강 하류의 섬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 평안북도 신도군에 속합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화도회군」 · Wikipedia "Wihwado Retreat" · Wikipedia "Wihwa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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