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이 당 태종에게 함락됐다면
645년, 당 태종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작은 산성 하나가 88일 동안 그 길을 막았습니다. 안시성이 무너졌다면 고구려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건 645년고대 · 전쟁의 갈림길조회 0댓글 02026.11.03
AI 재현도산성 동남쪽에 흙산이 하루하루 높아졌습니다. 마침내 흙산 꼭대기가 성벽보다 높아졌습니다. 성 안의 군사들은 그 흙산을 바라보며 성벽을 지켰습니다.
실제88일 동안의 공방전
645년 4~5월당군이 요하를 건너 개모성을 빼앗고, 19일 공격 끝에 요동성도 함락합니다.
645년 6~7월백암성이 무너집니다. 구원하러 온 고구려·말갈군 15만 명이 패하고, 3만 6,800명이 항복합니다.
645년 여름~가을당군이 60일 동안 연인원 50만 명을 들여 성벽보다 높은 토산(흙산)을 쌓습니다. 토산이 무너지자 고구려군이 오히려 차지합니다.
645년 9월 18일추위가 다가오고 군량이 떨어지자 당 태종이 서둘러 군대를 물립니다.
AI 재현도갈림길60일을 쌓은 흙산, 사흘의 싸움
토산을 쌓은 기간60일
VS토산을 되찾으려 싸운 기간3일
토산은 안시성을 무너뜨릴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토산이 무너지며 성벽 한쪽이 부서졌고, 그 틈에 고구려군이 토산을 차지했습니다. 당군은 사흘 동안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겨울을 앞두고 물러났습니다.
만약토산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토산이 그대로 버텨 당군이 그 위에서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미 요동성과 백암성을 빼앗은 당군에게 남은 큰 걸림돌은 안시성이었습니다.
- 645년 가을안시성이 함락되고 당군이 요동 지역을 손에 넣습니다.
- 646년 봄당군이 겨울을 요동에서 나고 평양으로 진격합니다.
- 640년대 후반고구려가 수도를 지키려 총력전을 펴고, 백제와 신라는 당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요동에서 평양까지는 길이 멀고, 고구려에는 단단한 산성이 더 있었습니다.
②겨울이 오면 먼 곳까지 군량을 나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③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조정은 여전히 큰 군대를 모을 힘이 있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안시성 | 88일을 버티고 지킴 | 가을에 함락 |
| 당 태종 | 9월 18일 퇴각 | 요동에서 겨울을 남 |
| 토산 | 고구려군이 차지 |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됨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전쟁이 일찍 끝나 수십 년 이어진 고구려와 당의 싸움이 짧아졌을 수 있습니다.
- 당의 문물이 요동과 한반도 북부로 더 일찍 들어왔을 수 있습니다.
- 신라가 당과 손잡을 까닭이 줄어 삼국의 관계가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고구려가 일찍 무너져 그 문화와 기록이 훨씬 적게 남았을 수 있습니다.
- 만주와 한반도 북부가 오랫동안 당의 지배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안시성으로 여겨지는 영성자 산성이 지금 중국 랴오닝성(요령성) 하이청시(해성시)에 남아 있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시성전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시성」 · Wikipedia "Siege of Ansi" · 생글생글(한국경제) 안시성 전투 기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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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를 기다립니다안시성이 당 태종에게 함락됐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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