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졌다면
기원전 480년 9월, 아테네 앞바다의 좁은 해협에서 그리스 함대가 페르시아의 대함대와 맞섰습니다. 이 바다에서 그리스가 졌다면 아테네의 민주정과 학문은 꽃필 수 있었겠습니까?
사건 기원전 480년고대·중세 · 전쟁의 갈림길조회 0댓글 02026.11.03
AI 재현도아테네 사람들은 이미 도시를 비우고 피란해 있었습니다. 해협 건너 아이갈레오스산 비탈에서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자리를 펴고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실제좁은 바다의 하루
기원전 480년 여름페르시아군이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의 후위 부대를 무너뜨리고,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방으로 들어옵니다.
9월아테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리스군이 다투다 달아나려 한다'는 거짓 소식을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냅니다. 페르시아 함대가 좁은 해협으로 들어옵니다.
해전 당일좁은 바다에서 큰 함대가 오히려 서로 엉킵니다. 그리스의 삼단노선(노를 세 줄로 젓는 군함)이 들이받아 페르시아 함대를 무너뜨립니다.
기원전 479년그리스가 플라타이아이 전투와 미칼레 해전에서 이겨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칩니다.
AI 재현도갈림길적을 좁은 바다로
그리스 함대약 310~380척
VS페르시아 함대약 600~800척(현대 추정)
넓은 바다였다면 배가 많은 페르시아가 유리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적을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여 그 많은 수를 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는 약 40척을 잃었고 페르시아는 훨씬 많이 잃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군대 상당수를 이끌고 아시아로 돌아갔습니다.
만약페르시아가 해협 밖에서 기다렸다면
크세르크세스가 거짓 소식에 속지 않고 해협 밖에서 기다렸다고 가정합니다. 서로 다투던 그리스 연합 함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흩어졌을 수 있습니다.
- 기원전 480년그리스 함대가 흩어지고, 페르시아 해군이 그리스 남쪽 해안을 마음대로 오갑니다.
- 기원전 479년스파르타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이 하나씩 항복하거나 페르시아 편에 섭니다.
- 기원전 5세기 후반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서쪽 지방이 되고, 총독(왕이 보낸 지방 장관)이 다스립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그리스는 산이 많아 큰 군대가 움직이고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②스파르타의 육군은 여전히 강했고, 실제로 이듬해 플라타이아이에서 페르시아 육군을 꺾었습니다.
③페르시아는 먼 바닷길로 식량을 날라야 해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불리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살라미스 | 그리스 승리 | 페르시아 승리 |
| 아테네 | 그리스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 | 페르시아의 지방 도시 |
| 그 뒤 그리스 | 도시국가들이 스스로 다스림 | 페르시아 총독이 다스림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교류가 한 제국 안에서 더 일찍 활발해졌을 수 있습니다.
- 그리스 도시국가끼리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 같은 내전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 오늘 '유럽'과 '중동'을 서로 다른 세계로 나눠 보는 생각이 덜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아테네의 민주정이 자라지 못해, 오늘 쓰는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과 생각이 다른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 파르테논 신전처럼 아테네 전성기에 생긴 건축과 연극이 남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해전 8년 뒤인 기원전 472년 아테네에서 처음 공연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은 지금 남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 연극으로, 오늘날에도 무대에 오릅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Battle of Salamis" · Livius "Salamis (480 BCE)" · Wikipedia "The Pers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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