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는 사료로, 만약의 역사는 근거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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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 없었다면

1347년 가을, 지중해의 한 항구에 배 몇 척이 들어왔습니다. 몇 년 뒤 유럽 사람 셋 중 한 명 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배들이 오지 않았다면 유럽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2026.11.03 · 1347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구에 제노바 갤리선(노를 젓는 배)들이 닿았습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가운데 열에 들뜬 이들이 있었습니다.

실제항구에서 대륙으로

1340년대흑해 북쪽 크림반도의 항구 카파에 병이 돕니다. 제노바 상인들이 배를 타고 빠져나옵니다.
1347년 10월제노바 갤리선 12척이 시칠리아에 병을 옮깁니다. 피난민을 따라 섬 전체로 퍼집니다.
1348년병이 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와 유럽 곳곳으로 번집니다.
1351년일손이 모자라 품삯이 오르자, 영국은 품삯을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묶는 법을 만듭니다.

갈림길사람이 줄자 값이 달라지다

유럽 인구 중 사망약 30~60%
VS
살아남은 일꾼품삯 상승

사망률은 자료마다 다르지만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 추정이 많습니다. 일할 사람이 줄자 영주는 노동 대신 돈으로 땅값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품삯을 억누르는 법은 1381년 영국 농민 반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만약병이 유럽에 닿지 않았다면

1347년 배들이 병을 싣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병은 결국 다른 길로 왔겠지만, 수십 년 늦게 왔다고 생각해 봅니다.

  • 1350년대유럽 인구는 그대로입니다. 땅은 모자라고 품삯은 낮게 머뭅니다.
  • 1400년대농민은 영주의 땅에 묶인 채 일합니다. 농노제(농민이 영주에게 매인 제도)가 더 오래 갑니다.
  • 1500년대일손이 넘쳐 일을 덜어 줄 새 도구를 찾을 필요가 줄어듭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인구가 땅에 비해 많아 흉년이 오면 굶주림이 컸습니다.
②배와 상인이 오가는 한 전염병은 언젠가 왔을 것입니다.
③전쟁과 다른 질병도 인구를 계속 줄였습니다.

실제 vs 만약

실제만약
1350년대인구 급감인구 유지
농민품삯 오르고 반란땅에 묶인 채 일함
대비격리 제도 등장격리 제도 늦게 등장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을 것입니다.
  • 잃어버린 기술과 기록이 더 많이 남았을 수 있습니다.
  • 유럽 인구가 지금보다 많았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전염병에 대비하는 격리 제도가 늦게 생겼을 수 있습니다.
  • 농민의 지위가 오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1377년 라구사(지금의 두브로브니크)는 전염병 지역에서 온 사람을 30일간 따로 머물게 했고, 이 기간이 40일로 늘면서 '격리(quarantine)'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Black Death" · Wikipedia "Black Death in Italy" · Wikipedia "Statute of Labourers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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