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암살이 실패했다면
1914년 6월, 한 번 실패한 암살이 운전기사의 실수로 다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날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세계대전은 일어났겠습니까?
1914년 6월 28일 아침, 사라예보의 강변 길로 지붕을 접은 자동차 행렬이 지나갔습니다. 길가 군중 속에는 무기를 품은 젊은이 여섯 명이 섞여 있었습니다.
실제한나절의 우연
오전 10시 10분쯤차브리노비치가 던진 폭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의 차에 맞고 튕겨 나가, 뒤차 밑에서 터집니다.
행사를 마친 뒤돌아가는 길이 바뀌었지만 운전기사는 이를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차는 라틴 다리에서 원래 길로 꺾습니다.
그 직후차를 돌리려다 멈춘 곳 바로 앞에 프린치프가 있었습니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아내 조피가 총에 맞아 숨집니다.
7월 28일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갈림길몇 걸음의 차이
첫 번째 시도폭탄, 빗나감
VS두 번째 시도멈춘 차, 바로 앞
첫 폭탄이 빗나간 뒤 암살자들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프린치프는 자리를 옮겨 한 식료품점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차가 멈추지 않았다면, 그날의 암살은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만약차가 바뀐 길로 달렸다면
운전기사가 바뀐 길을 미리 전해 듣고 곧장 강변 길로 달렸다고 가정합니다. 바뀌는 것은 차 한 대의 방향뿐입니다.
- 1914년황태자는 무사히 돌아가고, 그해 7월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1910년대 후반강대국들의 무기 경쟁은 계속되지만, 전쟁의 불씨는 다른 곳을 찾아 헤맵니다.
- 그 뒤황태자가 황제 자리에 올라, 제국 안 여러 민족의 권한을 넓히려 합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유럽은 이미 두 편의 동맹으로 나뉘어 서로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②강대국들은 경쟁하듯 군대와 무기를 늘렸습니다.
③발칸반도(유럽 동남부)에서는 민족 갈등이 계속 끓고 있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6월 28일 | 황태자 부부 사망 | 무사히 돌아감 |
| 7월 | 최후통첩(7월 23일)과 선전포고 | 평범한 여름 |
| 그 뒤 | 제1차 세계대전 | 불안한 평화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여러 제국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고 천천히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
- 전쟁으로 잃은 수많은 목숨이 살아남습니다.
- 유럽의 지도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입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전쟁이 몇 년 늦게, 더 강한 무기로 터졌을지 모릅니다.
- 제국 안에 묶인 민족들의 독립은 더 늦어졌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프린치프가 서 있던 식료품점 건물은 지금 라틴 다리 옆의 '사라예보 박물관 1878–1918'이 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Assassination of Archduke Franz Ferdinand" · Wikipedia "Museum of Sarajevo 1878–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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