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몽골 함대를 비껴갔다면
1281년, 원나라는 기록상 14만 명의 대군을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태풍 한 번에 함대가 무너졌습니다. 태풍이 비껴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규슈 앞바다에 수많은 배가 닻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배들이 서로 부딪치며 부서졌습니다.
실제두 번의 원정, 두 번의 바람
1274년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처음 일본 하카타만에 쳐들어옵니다. 폭풍을 만나 배를 많이 잃고 돌아갑니다.
1276년일본 막부(무사 정권)가 하카타만 해안을 따라 높이 약 2m의 돌담을 쌓습니다.
1281년 여름고려에서 떠난 동로군과 중국 남쪽에서 떠난 강남군이 다시 쳐들어옵니다. 두 함대는 몇 주 동안 해안에서 싸우며 머뭅니다.
8월 15일 무렵태풍이 닻을 내린 함대를 덮칩니다. 병사 절반 넘게 목숨을 잃고, 남은 배는 몇백 척뿐이었습니다.
갈림길숫자로는 압도
동로군(고려 출발)약 900척
VS강남군(중국 남쪽 출발)약 3,500척
기록대로라면 두 함대를 합쳐 14만 명이 넘었습니다. 다만 이 숫자는 부풀려졌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다를 건너온 대군이 태풍 앞에서 힘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만약태풍이 비껴갔다면
날씨 하나만 바꿔 봅니다. 태풍이 조금만 빗나갔다면, 함대는 고스란히 남아 다시 상륙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 1281년 가을원나라 군대가 규슈 북부에 발을 디딥니다.
- 1280년대규슈에 원나라의 거점이 생기고, 일본 막부는 오랜 저항을 이어 갑니다.
- 14세기원나라가 흔들리자 일본 땅의 원나라 세력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납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바다 건너로 군량과 병력을 계속 보내기 어려웠습니다.
②일본 무사들은 해안 돌담에 기대 끈질기게 막았습니다.
③배와 병사 대부분은 고려와 옛 남송 땅에서 억지로 모은 것이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1281년 결과 | 함대가 태풍에 무너짐 | 규슈 상륙 |
| '가미카제'라는 말 | '신이 보낸 바람'으로 남음 | 생기지 않음 |
| 고려 | 배와 군사를 보내 큰 손실 | 더 오래 배와 군사를 보냄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일본과 대륙의 교류가 더 일찍 넓어졌을 수 있습니다.
- '신이 지키는 나라'라는 믿음이 자라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동아시아 바닷길 무역이 더 빨리 열렸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규슈가 오랜 전쟁터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 고려는 더 많은 배와 군사를 바쳐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일본 후쿠오카시의 니시진·이키노마쓰바라·이마즈에서는 그때 쌓은 돌담(원구방루)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Mongol invasions of Japan" · Wikipedia "Kamikaze (typhoon)" · クロスロードふくおか 「元寇防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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