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의 독재관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장에서 칼에 찔려 쓰러졌습니다. 그가 그날 살아남았다면 로마는 어떤 나라가 되었겠습니까?
사건 기원전 44년고대·중세 · 한 사람의 선택조회 0댓글 02026.11.03
AI 재현도로마 사람들이 '이두스'라 부르던 3월 15일이었습니다. 폼페이우스 극장에 딸린 회의장에 들어선 카이사르를 의원들이 둘러쌌고, 곧 단검이 번뜩였습니다.
실제3월 15일과 그 뒤
기원전 44년 초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죽을 때까지 비상 권한을 쥐는 최고 관리)'에 오릅니다.
3월 15일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이끄는 60명 넘는 의원들이 폼페이우스 회의장에서 카이사르를 찌릅니다. 상처는 23곳이었습니다.
기원전 31년내전 끝에 카이사르의 상속자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꺾습니다.
기원전 27년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받고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됩니다.
AI 재현도갈림길원정 사흘 전
암살된 날3월 15일
VS원정을 떠날 날3월 18일
카이사르는 사흘 뒤 동쪽의 파르티아(지금의 이란 일대에 있던 나라)를 치러 로마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암살자들은 공화정(귀족 회의와 선거로 다스리는 체제)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공화정을 되살리지 못하고 13년 넘는 내전을 불렀습니다.
만약그날 회의장에 가지 않았다면
카이사르가 그날 회의에 나가지 않고, 예정대로 3월 18일 원정을 떠났다고 가정합니다. 출발 날짜까지 정해져 있었으니 엉뚱한 가정이 아닙니다.
- 기원전 44년카이사르가 로마를 떠나 동쪽 원정길에 오릅니다.
- 기원전 40년대 후반파르티아와의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로마는 그의 측근들이 대신 다스립니다.
- 그 뒤돌아온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으로 다스리며, 황제의 나라가 더 일찍 자리 잡습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원로원 귀족들은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쥐는 것을 끝까지 싫어했습니다.
②파르티아는 멀고 넓은 나라여서 원정이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③카이사르가 떠난 뒤 누가 권력을 이을지를 두고 다툼이 또 일어났을 것입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기원전 44년 3월 | 원로원에서 암살 | 동쪽 원정 출발 |
| 그 뒤 13년 | 로마 안의 내전 | 파르티아와의 전쟁 |
| 첫 황제 |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가 사실상 첫 황제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이 살았을 수 있습니다.
- 로마가 동쪽으로 더 넓어져 지중해와 서아시아가 더 일찍 하나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 오늘 '로마의 첫 황제'를 물으면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 카이사르를 꼽았을 것입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공화정이 더 빨리 끝나 원로원과 선거의 전통이 일찍 힘을 잃었을 수 있습니다.
- 먼 원정에서 카이사르가 지거나 죽었다면 로마는 더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로마의 라르고 디 토레 아르젠티나 광장 유적에는 카이사르가 쓰러진 폼페이우스 회의장의 터로 여겨지는 기초가 남아 있으며, 2023년 6월부터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Assassination of Julius Caesar" · Wikipedia "Augustus" · NBC News(AP) "Ancient Roman temple complex, with ruins of building where Caesar was stabbed, opens to tour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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