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고구마가 아메리카 밖으로 퍼지지 않았다면?
감자튀김, 군고구마, 감자전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먹습니다. 만약 감자와 고구마가 끝내 아메리카에만 머물렀다면, 세계와 한반도의 밥상은 어떻게 달라졌겠습니까?
AI 재현도감자와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습니다. 먼저 이 작물들이 어떻게 바다를 건넜는지 보고, 그다음 조건 하나만 바꿔 보겠습니다.
실제감자와 고구마는 어떻게 온 세계로 퍼졌을까
감자는 지금의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북서부, 안데스 산지에서 처음 길렀습니다. 기원전 8000년~5000년 사이로 봅니다. 고구마도 아메리카의 따뜻한 지역에서 온 작물입니다.
1492년 이후 두 대륙 사이에 작물과 동물, 병이 오갔습니다. 이것을 콜럼버스 교환이라고 부릅니다. 감자는 1570년 무렵 스페인에 들어왔고, 1700~1900년 사이 북유럽에 퍼지며 인구가 느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 몇 품종에 크게 기대어 살았습니다. 1845년부터 감자역병(감자를 썩게 하는 병)이 번지며 감자 농사가 거듭 망했습니다. 약 840만 명이던 인구 가운데 약 100만 명이 굶주림과 병으로 숨지고, 약 200만 명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고구마는 1763년 통신사 조엄이 일본 대마도에서 종자를 얻어 오면서 들어왔습니다. 동래와 제주에서 시험 재배를 했습니다. 감자는 1824년 무렵 청나라 사람들이 북쪽 국경을 넘어 가져왔다는 기록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있습니다.
고구마는 흉년에 굶주림을 막는 작물(구황 작물)로 주목받았습니다. 동래부사 강필리는 재배에 성공한 뒤 우리나라 첫 고구마 책인 『강씨감저보』를 남겼습니다.
AI 재현도감자와 고구마가 끝내 아메리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가정합니다. 옥수수, 고추 같은 다른 작물과 나머지 조건은 모두 그대로 둡니다.
나머지 조건은 모두 실제와 같다고 봅니다.상상감자 없는 세계
- 1처음 – 16~17세기
유럽의 추운 북쪽 사람들은 계속 밀, 보리, 귀리에만 기대었을 것입니다. 날씨가 나쁜 해에는 굶주림이 더 자주 찾아왔을 것입니다. 인구도 실제보다 천천히 늘었을 것입니다.
- 2수백 년 뒤 – 18~19세기
아일랜드는 감자로 인구가 크게 늘지도 않고, 감자 대기근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 다른 곡식의 흉년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흉년에 기댈 고구마와 감자가 없어, 산골과 바닷가 마을이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 3오늘날
감자튀김과 감자칩, 군고구마는 페루 같은 아메리카 나라에서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강원도의 감자밭은 옥수수나 메밀밭이었을 것입니다. 해외여행을 가서야 "감자라는 신기한 음식"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AI 상상도그대로그래도 바뀌지 않았을 것
겨울 길거리에 군고구마 장수 대신 군밤 장수만 서 있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는 감자튀김 대신 옥수수튀김을 줍니다. 친구가 페루 여행에서 사 온 "감자칩"을 반 친구들이 신기해하며 한 조각씩 나눠 먹습니다.
실제 vs 상상
| 실제 | 상상 | |
|---|---|---|
| 감자 | 세계 곳곳에서 먹는 주요 작물 | 아메리카에서만 먹는 작물 |
| 아일랜드 | 감자에 기대다 대기근을 겪음 | 다른 곡식에 기대어 삶 |
| 조선의 흉년 대비 | 고구마와 감자를 심음 | 메밀, 조, 나물에 기댐 |
| 강원도 들판 | 감자밭이 많음 | 옥수수나 메밀밭 |
실제로는 지금페루 수도 리마에는 국제감자센터(CIP)가 있습니다. 이곳 유전자은행은 안데스 토종 감자를 중심으로 재배 감자 5,000여 종류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감자 전래 200주년을 맞아 2024년 하지 무렵인 6월 21일을 감자의 날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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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를 기다립니다감자와 고구마가 없는 밥상, 견딜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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