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서경 천도가 성공했다면
1135년 정월, 승려 묘청이 서경(지금의 평양)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고려의 서울을 서경으로 옮기자던 그의 주장이 이루어졌다면 고려는 어떤 나라가 되었겠습니까?
사건 1135년고려 · 혁명과 정변조회 0댓글 02026.11.06
AI 재현도대동강이 흐르는 서경 들판에 새 궁궐이 서 있었습니다. 묘청은 이곳으로 서울을 옮기면 금나라가 스스로 조공을 바치러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개경의 귀족들은 끝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실제천도 논의에서 반란까지
1126년이자겸이 권력을 쥐고 있던 고려가 새로 일어난 금나라에 사대(큰 나라를 섬기는 예)를 약속합니다.
1128~1129년묘청이 개경의 땅 기운이 다했다며 서경 천도(서울을 옮김)를 주장하고, 서경에 새 궁궐이 지어집니다.
1135년 1월천도가 막히자 묘청이 서경에서 나라 이름을 '대위', 연호(해를 세는 이름)를 '천개'라 하고 군사를 일으킵니다.
1136년 2월김부식이 이끈 관군이 1년 넘게 서경을 에워싼 끝에 성을 무너뜨립니다. 묘청은 그 전에 부하 조광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AI 재현도갈림길서경파와 개경파
묘청과 서경파천도·칭제·금 정벌
VS김부식과 개경파개경 유지·금 정벌 반대
서경파는 왕을 황제라 부르고(칭제) 금나라를 치자고 했습니다. 개경파는 금나라와 싸우면 나라가 위험하다며 맞섰습니다. 훗날 신채호는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는 글에서 이 싸움을 천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 불렀습니다.
만약인종이 서경으로 옮겨 갔다면
반란이 일어나기 전, 인종이 묘청의 말을 받아들여 서울을 서경으로 옮겼다고 가정해 봅니다. 인종은 실제로 서경에 여러 번 행차하고 새 궁궐도 짓게 했습니다.
- 1130년대고려 왕이 서경에서 스스로 황제라 부르고 고려만의 연호를 씁니다.
- 1140년대고려가 금나라에 대한 사대를 멈추고, 북쪽 국경에 군대를 모읍니다.
- 1150년대개경 귀족의 힘이 줄고, 서경을 중심으로 한 새 세력이 조정을 이끕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금나라는 1125년 요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강해 고려가 맞서 이기기 어려웠습니다.
②개경에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해 온 문벌 귀족이 단단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③1134년 서경 새 궁궐에 벼락이 떨어지는 등 묘청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고려의 서울 | 개경 | 서경(평양) |
| 금나라와의 관계 | 사대를 이어 감 | 사대를 멈추고 맞섬 |
| 묘청 | 부하에게 죽임을 당함 | 새 조정의 중심 인물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평양이 고려의 서울로 이어져 북쪽 땅을 더 일찍 넓혔을 수 있습니다.
- 왕을 황제라 부르는 자주적인 전통이 더 굳게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 개경 문신 귀족의 독주가 줄어 무신정변 같은 큰 혼란을 피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금나라와 큰 전쟁이 벌어져 고려가 큰 피해를 입었을 수 있습니다.
- 서울을 옮기는 데 많은 돈과 노동이 들어 백성의 짐이 무거워졌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이 1145년에 펴낸 『삼국사기』는 지금 전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입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묘청의 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위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 · 자유아시아방송(RFA) 「묘청의 서경천도와 북한의 수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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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생각은?
첫 표를 기다립니다묘청의 서경 천도가 성공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골라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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