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이겼다면
1863년 여름, 남부 군대가 북부 땅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 싸움에서 남부가 이겼다면 미국은 하나로 남았겠습니까?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에 7월의 뙤약볕이 내리쬐었습니다. 사흘째 오후, 남부 병사들이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질러 북부 진지로 걸어 나갔습니다.
실제1863년 여름의 두 패배
1863년 1월 1일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이 효력을 냅니다. 전쟁의 목적에 노예제 폐지가 더해집니다.
7월 1~3일게티즈버그 전투. 사흘째 남부의 대규모 돌격(피킷의 돌격)이 무너지고, 리 장군은 남쪽으로 물러납니다.
7월 4일서부의 요새 도시 빅스버그가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합니다.
1865년 4월 9일리 장군이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항복합니다. 전쟁은 사실상 끝납니다.
갈림길게티즈버그의 병력 차이
북부 군대9만 명이 넘는
VS남부 군대7만 명 안팎
남부는 병력이 적은 만큼 북부 땅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동안 양쪽에서 4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고, 남부는 다시 북부로 쳐들어갈 힘을 잃었습니다.
만약사흘째 돌격이 성공했다면
피킷의 돌격이 북부 진지를 뚫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오랜 전쟁에 지친 북부에는 이미 협상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 1863년남부 군대가 워싱턴과 필라델피아를 위협합니다. 북부에서 평화 협상 여론이 커집니다.
- 1864년대통령 선거에서 전쟁을 끝내자는 쪽이 힘을 얻고, 남부의 독립을 인정하는 협상이 열립니다.
- 1870년대북아메리카에 두 나라가 섭니다. 국경을 따라 긴장이 이어집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같은 날 빅스버그가 함락됐습니다. 서부 전선은 여전히 북부가 앞섰습니다.
②북부는 공장과 철도가 훨씬 많았습니다. 한 번 져도 다시 군대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③노예 해방 선언 뒤로는 영국·프랑스가 노예제를 지키는 쪽을 드러내 놓고 돕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1863년 7월 | 북부 승리, 리 장군 후퇴 | 남부 승리, 북부 위협 |
| 노예제 | 1865년 수정헌법 제13조로 폐지 | 남부에서 계속 유지 |
| 나라 | 하나의 미합중국 | 북부와 남부 두 나라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남부에서도 결국 노예제가 무너지고, 두 나라가 이웃으로 지냅니다.
- 미국이 하나의 거대한 나라가 아니어서 20세기 세계 질서가 지금과 다릅니다.
- 북아메리카에 대통령이 두 명입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노예제가 수십 년 더 이어지고, 많은 사람이 자유를 더 늦게 얻습니다.
- 두 나라가 국경을 두고 거듭 전쟁을 벌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게티즈버그 싸움터는 지금 게티즈버그 국립 군사 공원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Battle of Gettysburg" · American Battlefield Trust "10 Facts: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Appomattox Court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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