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아남았다면
1392년 봄, 정몽주는 이성계를 따르는 세력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경의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사람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몽주가 살아남았다면 고려는 이어졌겠습니까?
사건 1392년고려 · 한 사람의 선택조회 0댓글 02026.11.04
AI 재현도송악산 아래 개경의 기와지붕들 위로 봄볕이 내렸습니다. 정몽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돌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다리 위에서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 쓰러졌습니다.
실제1392년, 봄에서 여름까지
1388~1389년정몽주는 위화도 회군 뒤 이성계와 함께 우왕·창왕을 물리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탭니다.
1392년 3월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고 조정에 나오지 못합니다.
1392년 4월정몽주가 이 틈에 정도전·조준·남은 등을 탄핵(관리의 잘못을 따져 물러나게 함)해 귀양 보냅니다.
1392년 4월 4일(음력)위기를 느낀 이방원이 조영규 등을 보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입니다. 7월, 공양왕이 물러나고 이성계가 왕위에 오릅니다.
AI 재현도갈림길석 달 만에 바뀐 왕조
정몽주가 숨진 때1392년 4월
VS이성계가 왕이 된 때1392년 7월
정몽주가 숨지자 조정은 다시 이성계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6월에는 귀양 갔던 정도전과 남은이 돌아왔고, 조준도 다시 조정에 섰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새 왕조가 열렸습니다.
만약선죽교의 습격이 실패했다면
조영규 등의 습격이 실패해 정몽주가 무사히 집에 닿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성계는 아직 몸을 다친 채였고, 정도전 등은 귀양지에 있었습니다.
- 1392년 봄정몽주가 습격을 문제 삼아 이방원과 그 측근들까지 조정에서 몰아냅니다.
- 1392년 여름이성계 세력이 크게 약해지고, 공양왕과 고려 조정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 1390년대고려가 개경을 도읍으로 이어지며 정몽주가 바라던 대로 고려 안에서 개혁이 추진됩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이성계는 오랜 싸움으로 다져진 군대와 높은 인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②새 왕조를 바라는 신진 관리들이 이미 조정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③고려 왕실은 몇 차례 왕이 바뀌며 힘과 믿음을 많이 잃은 상태였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정몽주 | 1392년 선죽교에서 피살 | 살아남아 조정을 이끎 |
| 정도전 등 | 6월에 돌아옴 | 귀양지에 남음 |
| 1392년 7월 | 이성계 즉위 | 공양왕이 자리를 지킴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왕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긴 피바람이 줄었을 수 있습니다.
- 개성이 오랫동안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남았을 수 있습니다.
- 고려의 불교 문화와 기록이 지금보다 더 많이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토지 제도 같은 큰 개혁이 늦어져 백성의 어려움이 길어졌을 수 있습니다.
- 고려 조정과 이성계 세력이 맞서 큰 내전이 벌어졌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정몽주 선생 묘가 남아 있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몽주 선생 묘」 · 자유아시아방송(RFA)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조선 건국자 이성계」 · Wikipedia "Jeong Mong-ju" · Korea JoongAng Daily 「Vandalized graves, a murdered loyalist, a hijacked p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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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를 기다립니다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아남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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