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는 사료로, 만약의 역사는 근거로 씁니다
세계사전쟁의 갈림길

탈라스 전투에서 당이 이겼다면

751년 여름, 중앙아시아 탈라스강 가에서 당나라 군대와 아바스 왕조(이슬람 제국) 군대가 맞섰습니다. 이 싸움에서 당이 이겼다면 실크로드의 주인은 달라졌겠습니까?

사건 751년고대·중세 · 전쟁의 갈림길조회 0댓글 02026.11.06

중국 국기당우즈베키스탄 국기아바스 왕조(중앙아시아)

751년 여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탈라스강의 넓은 골짜기, 은빛으로 갈라져 흐르는 강, 양쪽의 눈 덮인 톈산 산줄기, 흙벽돌로 지은 네모난 작은 요새와 미루나무, 푸른 밭AI 재현도
배경751년 여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탈라스강의 넓은 골짜기, 은빛으로 갈라져 흐르는 강, 양쪽의 눈 덮인 톈산 산줄기, 흙벽돌로 지은 네모난 작은 요새와 미루나무, 푸른 밭

눈 덮인 산 아래 강 골짜기에 두 군대가 진을 쳤습니다. 당군을 이끈 사람은 고구려 유민(나라가 망한 뒤 남은 백성)의 아들 고선지였습니다. 싸움 닷새째, 당군 편에 섰던 카를루크 군대가 갑자기 등을 돌렸습니다.

실제닷새 동안의 싸움

747년고선지가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소발률(지금의 파키스탄 길기트 부근)을 칩니다.
751년 7월탈라스강 가(지금의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경계)에서 고선지의 당군과 지야드 이븐 살리흐가 이끈 아바스 군대가 맞붙습니다.
싸움 닷새째당군의 큰 몫을 차지하던 튀르크계 유목민 카를루크가 아바스 편으로 돌아섭니다. 앞뒤로 공격받은 당군은 크게 무너집니다.
755년~756년안녹산의 난(당의 장군 안녹산이 일으킨 큰 반란)이 터집니다. 고선지는 모함을 받아 756년 처형되고, 당은 중앙아시아에서 물러납니다.
같은 골짜기, 흙먼지 속에 맞부딪친 아주 작은 두 군대 무리와 옆에서 달려드는 작은 유목민 기병 무리AI 재현도
실제같은 골짜기, 흙먼지 속에 맞부딪친 아주 작은 두 군대 무리와 옆에서 달려드는 작은 유목민 기병 무리

갈림길등을 돌린 동맹군

당군 (추정)약 3만 명
VS
그중 카를루크약 3분의 2

당군의 대부분은 동맹으로 모은 유목민 군대였습니다. 싸움은 나흘 동안 팽팽했습니다. 그러나 카를루크가 등을 돌리자 당군은 앞뒤로 갇혔고, 몇천 명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만약카를루크가 끝까지 당 편에 섰다면

카를루크 군대가 돌아서지 않고 당군과 함께 싸웠다고 가정합니다. 실제로 싸움은 그 전까지 팽팽했으니 엉뚱한 가정은 아닙니다.

  • 751년아바스 군대가 서쪽으로 물러나고, 당은 탈라스 둘레 오아시스 도시들에 대한 힘을 지킵니다.
  • 750년대당과 아바스가 실크로드를 나눠 맡고, 상인들이 두 나라를 오갑니다.
  • 8세기 후반중앙아시아 유목민 사이에 이슬람교가 실제보다 천천히 퍼집니다.
같은 골짜기와 요새, 맑은 오후 강가를 따라 요새로 향하는 긴 낙타 대상 행렬과 풀을 뜯는 말 떼AI 상상도
만약같은 골짜기와 요새, 맑은 오후 강가를 따라 요새로 향하는 긴 낙타 대상 행렬과 풀을 뜯는 말 떼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755년 안녹산의 난이 터지면 당은 어차피 서쪽 군대를 불러들여야 했습니다.
②남쪽의 토번(티베트)이 당과 계속 다투며 서역 길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③탈라스는 수도 장안에서 너무 멀어 군사와 식량을 보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vs 만약

실제만약
중앙아시아아바스 왕조의 힘이 커짐당과 아바스가 나눔
종교튀르크 사람들에게 이슬람교가 퍼짐더 천천히 퍼짐
고선지패배한 장수로 기억됨서역을 지킨 장수로 기억됨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동서 무역이 더 활발했을 수 있습니다.
  • 중앙아시아의 불교 사원과 그림이 더 많이 남았을 수 있습니다.
  • 고구려 유민의 아들 고선지가 더 큰 영웅으로 남았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싸움의 당나라 포로가 사마르칸트에 종이 만드는 법을 전했다고 합니다(이 이야기를 의심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맞다면 종이가 서쪽으로 더 늦게 퍼졌을 수 있습니다.
  • 두 나라가 국경을 두고 더 오래 다퉈 중앙아시아에 전쟁이 잦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근처 코니길 마을에는 1990년대에 되살린 메로스 종이 공방이 있어, 지금도 뽕나무 껍질로 옛 사마르칸트 종이를 손으로 만듭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Battle of Talas" · Wikipedia "Gao Xianzhi" · Orexca "Konigil Meros Paper Factory, Samark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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