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화약 열차를 규정대로 다뤘다면
1977년 11월 11일 밤, 전북 이리역에 서 있던 화약 화차가 폭발해 59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약 열차를 규정대로 곧바로 보냈다면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AI 재현도1977년 11월 11일 저녁, 많은 이리 시민이 텔레비전으로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역 구내에는 화약을 실은 화물열차가 멈춰 서 있었습니다.
실제역에 멈춰 선 화약 열차
AI 재현도추모희생자를 기억하며
이 사고로 59명이 세상을 떠났고, 역에서 일하던 철도 공무원 16명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집과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이웃들은 오랫동안 그날 밤을 잊지 못했습니다. 30주년이던 2007년에는 익산역 광장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날 떠난 분들을 조용히 기억합니다.
손실사회가 잃은 것
역 구내에서 열차와 선로를 돌보던 철도 공무원 16명이 일터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이 지켜 온 현장의 경험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역 둘레 수백 채의 집이 완전히 무너지는 등 동네가 크게 부서졌고, 재산 피해는 약 61억 원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나라가 운영하는 철도에서 뒷돈 관행과 허술한 관리가 겹쳤다는 사실은 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습니다.
갈림길원칙과 그날 밤
1978년 재판에서 호송원은 징역 10년을, 화약 열차를 역에 대기시킨 철도 직원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위험한 짐을 도심 역에 오래 세워 둔 결정과 화차 안의 촛불 하나가 겹쳐 참사가 되었습니다.
만약화약 열차를 곧바로 보냈다면
이리역이 직송 원칙을 지켜 화약 열차를 대기시키지 않고 곧바로 광주로 보냈다고 가정합니다. 이미 있던 규정 하나를 지키는 것이라 엉뚱한 가정이 아닙니다.
- 1977년 11월 11일 밤화약 열차는 이리역을 지나 광주로 향하고, 시민들은 축구 경기를 끝까지 봅니다.
- 1977년 겨울역 둘레 동네는 평소처럼 겨울을 맞습니다.
- 그 뒤다만 화차 안의 불씨와 허술한 호송 관리는 그대로 남습니다.
AI 상상도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화약 열차 | 역 구내에 대기 | 곧바로 통과 |
| 인명 피해 | 사망 59명, 부상 1,343명 | 없음 |
| 이재민 | 약 7,800명 | 없음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 그날 떠난 59명이 가족 곁에서 오늘을 맞았을 수 있습니다.
- 역 둘레 동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 11월 11일이 슬픈 기억의 날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위험물 호송 관리가 허술한 채로 다른 역에서 같은 위험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 큰 참사가 없어 위험물 수송의 문제가 더 늦게 드러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정부는 1977년 11월 19일 '새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해 도시를 다시 세웠고, 역은 1978년 11월 11일 남쪽으로 약 100m 옮긴 자리에 새로 지어져 지금의 익산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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