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10년 더 살았다면
1800년 여름, 정조가 4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끌던 개혁도 함께 멈췄습니다. 그가 10년 더 살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수원 화성의 성벽은 완공된 지 4년이 채 안 된 새것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한양에서 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내려왔습니다.
실제개혁이 멈춘 2년
1776년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규장각(왕실 도서관이자 학문 연구 기관)을 세웁니다.
1794~1796년수원 화성을 쌓습니다.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쓰입니다.
1800년정조가 세상을 떠납니다. 11세 순조가 즉위하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어린 왕 대신 하는 정치)을 합니다.
1801~1802년신유사옥(천주교 탄압)으로 많은 사람이 화를 입고, 정조가 키운 군대 장용영이 없어집니다.
갈림길한 사람이 떠나자
정조의 재위24년
VS장용영이 사라지기까지2년
정조는 신하들의 다툼을 누르고 왕이 직접 나라를 이끌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제도보다 왕 한 사람에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가 떠나자 정책은 빠르게 뒤집혔습니다.
만약정조가 1810년까지 살았다면
정조가 병을 이겨 내고 60세 가까이 살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순조가 어른이 될 때까지 곁에서 길을 닦아 줄 시간이 생깁니다.
- 1800년대 초장용영과 화성이 그대로 남아 왕을 받치는 힘이 됩니다.
- 1800년대서얼(첩의 자손)과 남인 등 밀려나 있던 인재가 더 많이 등용됩니다.
- 1810년어른이 된 순조가 왕위를 이어, 외척(왕비 집안)이 권력을 쥐기 어려워집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개혁이 여전히 왕 한 사람의 힘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②정조에 반대하던 신하들의 세력은 그가 살아 있어도 강했습니다.
③19세기에는 나라 밖의 큰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실제 vs 만약
| 실제 | 만약 | |
|---|---|---|
| 장용영 | 1802년 폐지 | 유지 |
| 순조의 정치 | 11세 즉위, 수렴청정 | 어른이 되어 즉위 |
| 신유사옥(1801) | 천주교 탄압이 크게 벌어짐 | 규모가 작았을 수 있음 |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세도 정치(왕비 집안이 권력을 쥔 정치)가 약했을 수 있습니다.
- 수원이 조선의 두 번째 중심 도시로 자랐을 수 있습니다.
- 실학(현실 문제를 푸는 학문)이 정치에 더 일찍 반영되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왕 한 사람의 힘이 너무 커져 반발이 더 거세졌을 수 있습니다.
- 개혁이 정조 뒤에 한꺼번에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정조가 쌓은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순왕후」 · itwiki 「장용영」 · itwiki 「수원 화성」 · 수원문화재단 「화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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