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는 사료로, 만약의 역사는 근거로 씁니다
한국사한 사람의 선택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았다면

1443년 겨울, 세종은 백성을 위한 새 글자를 완성했습니다. 신하들의 반대도 거셌습니다. 세종이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글자를 쓰고 있겠습니까?

2026.11.03 · 1443

궁궐 안 조용한 방, 등잔불 아래 종이 위에 낯선 획들이 하나씩 그려졌습니다. 소리를 그대로 담는 글자였습니다.

실제새 글자가 나오기까지

1443년 12월세종이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을 만듭니다. 처음 글자는 28자였습니다.
1444년 2월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새 글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세종은 직접 반박합니다.
1446년 9월글자의 원리와 쓰는 법을 풀이한 책과 함께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합니다.

갈림길수천 자와 28자

한자수천 자를 외워야 읽음
VS
훈민정음28자

당시 글은 한자로 썼습니다. 우리말을 적을 때는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린 이두를 썼지만, 배우기 어려워 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이 문제를 자신이 직접 풀기로 했습니다.

만약세종이 새 글자를 포기했다면

반대 상소를 받아들여 세종이 새 글자 사업을 그만두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왕이 건강도 좋지 않았던 때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선택입니다.

  • 1500년대양반은 한문으로, 관청은 이두로 글을 씁니다. 백성은 여전히 글을 읽지 못합니다.
  • 1800년대 말개화기에 서양 선교사와 개화파가 우리말을 적을 새 방법을 찾습니다.
  • 1900년대한자를 고친 글자나 로마자로 우리말을 적자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정말?그래도 쉽지 않았을 이유

①새 글자가 없어도 양반 중심의 나라는 그럭저럭 굴러갔습니다.
②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면 왕의 힘이 없어 널리 퍼지기 어려웠습니다.
③한문을 아는 것이 곧 권력이었기 때문에 바꾸려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실제 vs 만약

실제만약
1446년훈민정음 반포한문과 이두만 사용
백성의 글편지·소설을 한글로 씀글 아는 백성이 드묾
오늘한글 24자 사용한자 섞어 쓰기 또는 로마자

오늘그리고 2026년의 우리는?

좋은 갈래로 갔다면
  • 더 늦게라도 다른 소리 글자가 만들어졌을 수 있습니다.
  • 한자를 많이 알아 이웃 나라 글을 읽기 쉬웠을 수 있습니다.
  • 로마자를 썼다면 외국어 배우기가 조금 편했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갈래로 갔다면
  • 글을 읽는 사람이 훨씬 적은 시대가 오래 이어졌을 것입니다.
  • 한글날 같은 '글자의 날'도, 한글 문학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진짜 흔적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참고 자료 국가기록원 「한글」 · 국립국어원 「한글의 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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